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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명의 연금개혁 이야기] 대만 ‘타이베이와 신주’에서 본 대한민국의 연금과 의료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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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4. 11. 10.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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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 전 한국연금학회장)
지난 5일부터 6일 타이베이 '창융파재단 국제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된 '2024 Global Health and Welfare Forum in Taiwan'의 Parallel Session 좌장을 맡았다. 7일에는 의료·복지 분야 혁신현장 견학 기회가 있었다. 대만과 첫 만남은 2005년이었다. 2005년 10월 31일∼11월 3일 타이베이에서 개최된 '국제노동법·사회보장법학회(ISLSSL) 제8차 아세아대회'에서다. 당시 필자는 '노후보장과 연금제도에서의 아시아 국가 경험' 분야에서, 연금 주제로 '국가별 주제발표(National Report)'를 했다.

20여 년 전 일을 소환하는 이유가 있다. 당시 필자는 전 세계 많은 참가자가 지켜보는 대형 회의장에서 "세금으로 재원을 조달하는 기초연금을, 모든 노인에게 근로자 평균임금의 20% 수준으로 지급하라"는 'OECD Economic Surveys: Korea 2001' 내용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처럼 거세게 비판한 이유가 있었다. 당시의 한국 연금개혁 논의가 절망스러워서였다. 2003년 국민연금재정계산에서 보험료를 19.85%까지 인상해야 한다는 결과가 나왔음에도, 대다수 연금 전문가와 야당은 OECD가 권고한 기초연금 도입이 가장 시급하다며, 연금개혁을 막았다. 필자 외 극히 소수를 제외한, 대다수 한국의 연금 전문가와 야당이 OECD 권고안을 수용하라면서 했던 말이다. "시급한 건 국민연금 재정안정이 아닌 조세 방식 기초연금 도입이다."

이런 필자 발표에 대한 OECD 반응을 우연히 알 수 있었다. 2006년 9월 13일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에서 개최된 '저출산·고령화 대응 국제정책포럼'에서였다. 'OECD 회원국 가족과 출산정책'을 발표하러 온 OECD 아데마(Willem Adema) 팀장이 필자를 미스터 펜션(Mr. Pension)이라 부르면서다. 이후에도 한동안 아데마 팀장은 그렇게 불렀다. 2005년 타이베이 발표 직후, 아데마 팀장이 회의장에서 필자에게 다가와 "그렇게 생각하느냐? 파리 돌아가서 보고하겠다"고 했다. 그 이후 OECD 권고 내용에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2010년 이후부터는 "기초연금 대상자는 줄이되 취약 노인에게 더 지급하라"고 권고 내용이 완전히 바뀌었다.
2013년 9월 기초연금 도입 항의 표시로 진영 복지부 장관이 자진해서 사퇴했다. 그해 11월 행정원(行政院), 입법원(立法院), 사법원(司法院), 감찰원(監察院)과 함께 대만 5원(院)에 속한 고시원(考試院) 초청으로 대만을 방문했다. 한국에서 논의 중인 기초연금과 공무원연금 개혁 동향에 대해 대만 공무원 150명 대상 특강을 위해서였다.

고시원 대강당에서 개최된 행사에 대만 정부 장관 3∼4명이 참석했다. 필자 영어특강을 국립 중정대학 여건덕(Jen-Der Lue) 교수가 중국어로 순차 통역했다. 그 교수가 필자를 이번 포럼의 좌장으로 초청한 대만 보건복지부 차관이다. 당시 필자 강의에 대한 대만 복지부 공무원의 질문이다. "한국 정부는 그토록 이상한 제도를 왜 도입하려 하나? 이해하기 어렵다."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내용은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늘어날수록 기초연금액을 삭감하는 부분이었다." 국민연금 사각지대가 광범위한 상황에서, 국민연금의 가입기간이 늘어날수록 기초연금액을 최대 50%까지 삭감한다는 내용이, 중간소득 이하 취약계층 국민연금 가입유인을 현격히 떨어뜨릴 수 있다고 봐서다.

2013년 당시 기초연금 대선 공약을 지키라는 야당 압박이 거셌다. 장기 소요 비용이 상상을 초월하다 보니 이런 꼼수를 낸 것이다. 꼼수를 동원해 어려움을 벗어나면서, 명분도 챙기기 위해 흔히 써 왔던 수법이다. 지난 5월에 극적으로 통과되지 않았던 국민연금 개편안 역시 똑같은 방식이었다. 국민과 언론에는 개혁안이라 했으나, 미래 세대 부담을 더 늘린다는 측면에서 연금연구회가 '개악안'이라 했던 바로 그 방안 말이다. 그렇게 반대를 했었음에도 장관까지 바꿔가며 기초연금 도입을 관철시켰던 그 전문가들이 이번 공론화 위원회를 주도했다. 그러니 개악안이 개혁안으로 탈바꿈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공무원 두세 사람의 아이디어로 시작한 인천공항, 처음 꺼냈을 때 미친놈들이라는 소리를 들었고 심한 반대가 있었음에도 추진해서 얻은 결과다. … 제때 건설되지 않았더라면 늘어나는 수요와 건설부지 선정에 대한 의견 대립으로 고생하고 있을 것이다. … 연금개편 방향이 제대로 된 것인지는 20년도 안 돼 판가름 날 것이다. 20여 년 전 현명한 결정이 오늘날 인천공항을 만든 것처럼 20여 년 후 세계적으로 모범이 될 사회보장제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현실 인식이 선행돼야 한다. 주요 의사결정권자들의 냉철함과 소신이 필요한 이유다." 필자 칼럼인 '[경제 산책] 타이베이에서 돌아본 한국 ('한경 매거진' , 2013. 11.)'의 일부다.

세계 파운드리 반도체 산업을 주도하는 TSMC가 신주에 있다. 이번에 둘러본 신주 과학단지에서, IT와 접목한 의료산업으로 세계 시장을 주도하려는 대만의 의지가 범상치 않음을 느꼈다. 그 순간 후세대에게 부담을 추가로 더 떠넘기지 않으려면 보험료를 19.7%까지 인상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정부안을 비판만 하면서 연금특위조차 구성하지 못한 연금개혁 논의, 의대 정원 문제로 갈등 겪는 한국의 현실이 떠올랐다.

국립대만대 병원의 미션과 핵심가치는 '사회적 책임을 지킨다(Uphold social responsibilities)'와 '정직하고 정당한 책임(Honest and due responsibility)'이다. 국립대만대 병원 신주 분원 옆 '신주 생물의학 과학공원(Hsinchu Biomedical Science Park)'으로 표시된 큰 건물에 눈길이 자주 갔다. "우리의 우수 인력 상당수를 흡수한 의료계, 의료 관련 산업에서조차도 글로벌 경쟁에서 밀려난다면, 우린 도대체 무엇을 해서 먹고살아야 하나?"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활기가 넘쳐 보이는 신주에서 타이베이로 오는 고속도로를 꽉 메운 차를 보면서 느꼈던 심정이다!

윤석명 (보건사회硏 명예연구위원, 전 한국연금학회장)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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