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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욱 칼럼] ‘탄핵 공화국’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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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4. 12. 16.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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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대기자
요즘 초등학생 사이에서는 "반장도 잘못하면 탄핵된다"는 말이 심심찮게 나돈다고 한다. 최근 탄핵 정국 속에서 초등생들이 부모 대화 속에 녹아 있는 내용 가운데 귀동냥으로 가장 많이 들었을 법한 단어가 탄핵이라고 보면 이들의 뇌리에 탄핵이라는 단어가 깊이 박혀 있을 것 같다. 계엄선포와 탄핵을 둘러싸고 서울 광화문·여의도 등지에서 연일 이어졌던 가두집회의 모습을 초등생이라고 모를 리 없다. 어리다고는 하지만, 자연스럽게 대화의 중심에 탄핵·계엄이 자리 잡았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 초등생들이 아직 요람에 있었을 즈음 헌법재판소(헌재)는 헌정 사상 초유의 엄중한 판결을 내렸다. 현직 대통령을 권좌에서 물러나도록 한 것이었다. 당시 이정미 전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박근혜를 파면한다"고 판결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라는 존칭도 생략했다. 피청구인이라고는 했지만 범법자와 다름없는 시각으로 박 전 대통령을 취급했을 뿐이었다. 그는 "피청구인(박 전 대통령)의 위헌·위법 행위는 대의민주제 원리와 법치주의 정신을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탄핵심판 주문을 흔들림 없는 목소리와 차분한 표정으로 읽어 내렸다. 생중계로 온 세상에 전파된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그 목소리는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이 전 권한대행을 최근 어느 모임에서 만났다. 이정미 소장이라는 누군가의 소개에 수줍은 표정을 지었다. 지금도 차분한 인상 그대로였다. 아담한 체구에 학구파 외모를 한 이 변호사가 역사를 뒤바꾸는 판결을 선언했다는 게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어쨌든 헌재의 탄핵심판 결정으로 박 전 대통령은 물러났다. 헌정 사상 처음이라 국민 모두가 적이 놀랐다. 그 탄핵심판은 역사에 묻혀갔다. 국민 모두는 잘못을 하면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대통령일지라도 물러날 수 있다는 정치적 판단을 하게 됐다. 탄핵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가슴속에 넣어 두게 된 계기가 됐다. 그에 앞서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은 기각됐기에 그동안 국민의 뇌리에 탄핵이라는 단어는 그리 무겁게 자리 잡지 않았다.

그로부터 꼬박 8년 후 우리의 기억 속 한 구석에서 똬리를 튼 채 좀처럼 머리를 밖으로 낼 생각을 하지 않은 탄핵이라는 단어가 올해 연말 다시 머리를 들고 세상 밖으로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국회의 해제요구안 의결 등 숨 가쁜 정치적 격변이 이어지면서 "국민 노릇하기 참 힘들다"는 결코 웃을 수 없는 한숨이 자리하는 동안 탄핵은 우리의 일상으로 스며들어 강하게 자리를 잡았다. 윤 대통령 탄핵을 외치는 목소리가 높디높았다. 국회는 2번째 표결에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으면 안 되게 됐다.
'탄핵심판은 일반적인 사법절차나 징계절차에 따라 소추하거나 징계하기 곤란한 행정부의 고위직 공무원이나 법관 등과 같이 신분이 보장된 공무원이 직무상 중대한 비위를 범한 경우에 이를 의회가 소추하여 처벌하거나 파면하는 절차로서, 탄핵심판제도는 고위직 공직자에 의한 헌법침해로부터 헌법을 보호하기 위한 헌법재판제도다.'

헌재가 규정하고 있는 탄핵심판, 즉 탄핵의 정의다. 탄핵심판 대상 가운데 행정부의 고위직 공무원은 당연히 대통령을 포함한다. 법관 등 신분이 보장된 공무원은 판사나 검사 등을 뜻한다. 의회는 국회를 의미하며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제안해 통과시키면 헌재가 피소추인을 처벌하거나 파면한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여간해서는 일어나서는 안 될 정치적 격변이다. 그런 상황을 불과 8년 사이 2번이나 맞이한 우리의 마음은 무겁다 못해 땅속으로 깊게 빨려 들어간다. 한창 연말연시 다양한 행사로 가족과 친구와 즐거운 나날을 보내야 하는 시간에 분주히 흘러가는 정치 뉴스와 다양한 견해, 갑론을박에 빠질 수밖에 없어 마음이 진정 편치 않다. 그것도 세계 10대 경제대국, 5위 군사력, K팝 등 한류를 바탕으로 세계에 큰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우리 대한민국이 느닷없는 비상계엄과 그에 따른 현직 대통령 탄핵이라는 큰 격변에 휩싸이게 되면서 모두가 마냥 즐겁지 않은 연말연시를 보내고 있다. 이웃나라 일본의 젊은이들이 최근의 정치적 상황 탓에 한국 방문을 주저하고 있다는 소식은 마음을 더 무겁게 한다.

올 들어 접수된 탄핵심판사건은 무려 8건. 지난 8월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심판사건을 시작으로 12월 5일에는 최재해 감사원장, 이창수 중앙지검장, 조상원 중앙지검 4차장검사, 최재훈 중앙지검반부패수사2부장, 같은 달 12일에는 박성재 법무부 장관, 조지호 경찰청장, 그리고 14일 윤 대통령이 각각 탄핵소추 됐다. 이쯤 되면 대한민국은 '탄핵 공화국'이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매서운 바람이 불어대는 겨울, 불쑥 찾아온 탄핵이 우리 마음에 각자가 씻어내기 매우 어려운 큰 상처를 오랫동안 남기지 않을까 참으로 우려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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