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론 평온, 속으론 정지…공직사회 내부 '눈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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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인용한 4일 오후, 겉으로 보기에 각 부처들은 일상적인 모습을 유지했다. 하지만 내부 분위기는 평온한 것만은 아니었다.
공무원들은 겉으로는 차분함을 유지했지만, 정국 혼란에 대한 부담감 속에서 내부적으로는 움직임을 최소화하려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탄핵 인용이 미칠 파장을 예의주시하면서도, 정작 정책과 업무 결정에서는 한 발 물러선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핵심 정책 결정이나 예산 조정, 조직 개편 등 민감한 사안은 '대선 이후'로 넘기려는 기류가 강하게 엿보였다.
정권 재편이 임박했다는 현실 인식 속에 눈에 띄는 '복지부동' 기류가 퍼지고 있다. '움직이지 말 것', '결정하지 말 것', '눈에 띄지 말 것' 지금 관가를 움직이는 것은 이런 무언의 지침들이다. 과거 탄핵 정국에서의 학습효과도 작용하고 있다. 예단이 불러올 책임을 피하려는 분위기 속에, 각 부처는 눈에 띄는 정책 결정을 자제하고 있다.
중앙부처의 한 서기관은 "이미 박근혜 전 대통령 때 경험해봤기 때문에, 지금 가장 안전한 방법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며 "지금 무슨 결정을 내렸다가 정권 바뀌고 책임질 수도 있지 않나. 조직 전체가 움직임을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대선 정국이 본격화하면서 공무원 사회는 이전보다 훨씬 더 빠르게 복지부동 모드에 들어선 모습이다. 이미 국회의 탄핵 의결 직후부터 정책기획, 예산, 인사 등 주요 부서들에선 사실상 대부분의 실질적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 최소한의 행정만 유지되는 셈이다.
다른 부처의 한 국장은 "지금 누가 앞장서겠나. 결국 다음 정부가 새 방향을 제시할 텐데 괜히 미리 나서봐야 본인만 손해"라며 "그래서 간부들도 눈에 띄는 정책은 최대한 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 관가의 이러한 모습은 어찌 보면 '차분한 대응'으로도 읽힌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의 혼란을 겪은 경험은 이번에 일종의 정무적 학습으로 작용했다. 한 팀장급 공무원은 "그때는 불확실성에 당황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시스템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두가 알고 있다"며 "그래서 더 조용하고, 더 계산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조기 대선까지 남은 기간 동안 정책 공백이 불가피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 압박 등 대외변수에 대응해야 할 상황에서 관가의 '정지 상태'는 국가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복지부동이 길어질수록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일부 부처에서는 조심스러운 움직임도 감지된다. 차기 정권의 공약과 정책기조를 분석하며 내부 정리를 시도하는 '사전 대비' 작업이다.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은 공식 라인이 아닌 비공식 검토 수준에 그치고 있다.
한 과장급 공무원은 "겉으로는 조용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정권이 바뀌면 어떤 방향으로 갈지에 대해 시나리오별 대응을 고민하고 있다"며 "공식적인 보고나 회의는 없지만, 각자 판단은 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