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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설난영 “김문수, 원리원칙 중시…절제·검소·노력이 우리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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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채현 기자

승인 : 2025. 05. 31. 13:37

"어려운 분들 눈높이에 맞는 생활했었다"
"유시민, 가족처럼 같이 활동"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배우자 설난영 여사, 아시아투데이 방문
설난영 여사가 31일 본지의 유튜브 채널 '아투TV-최영재의 취재데스크'에 출연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송의주 기자
설난영 여사는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이자 본인의 배우자인 김문수에 대해 "주변 사람들이 힘들정도로 원리 원칙을 중요시 하는 사람"이라고 밝혔다.

설 여사는 31일 본지와 인터뷰에서 이 같이 밝혔다. 그는 "분리수거를 하더라도 종이박스에서 테이프가 완벽히 떨어질 때까지 애쓴다"면서 "심지어 다른 사람들이 제대로 하지 않고 버린 박스들의 테이프까지 벗기느라 한 번 내려가면 한참을 집에 올라오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저로 인해 남편에게 조금이라도 누를 끼치면 안됐기 때문에, 절제, 검소, 노력하는 우리들의 생활이었던 것 같다"면서 "저도 여성으로서 꾸미고, 돋보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남편이 일했던 (경기도) 지역구에 워낙 힘든 분들이 많아 그분들의 눈높이에 맞는 생활을 해왔다"고 밝혔다.

설 여사는 본인에 대해 '제정신이 아니다' 등의 발언을 한 유시민 작가에 대한 언급도 한차례 했다. 설 여사는 "우리 유시민 씨하고 다같이 활동을 했던 경험이 있다. 가족처럼"이라고 말했다.

영부인의 역할을 묻는 질문에는 "과거 남편이 국회의원과 경기도지사 등을 했을 때 독거노인, 치매환자, 아동 등 어려운 분들을 살피려고 했다. 제가 했던 활동이 전국으로 확대되는 상황이 되지 않겠나 생각한다. 나라를 국위 선양할 수 있는 품격과 품위, 거기에 따른 일종의 지식도 필요할 것 같다. 우리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그 위치에서 정말 어려우신 분들을 위헤 힘이 되는 역할을 해보고 싶다"고 답했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배우자 설난영 여사, 아시아투데이 방문
설난영 여사가 31일 본지의 유튜브 채널 '아투TV-최영재의 취재데스크'에 출연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송의주 기자
다음은 설 여사와의 일문일답.

-먼저, 설 여사님의 진솔한 모습 때문에 국민들의 인기가 상당하다. 이번 대선 기간 동안에 김문수 후보가 당선된다면, '설 여사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소개 부탁드린다.

"그렇게 말씀을 해 주신다면 저로서는 참 많이 부족한데 감사하게 생각이 들고 더 이렇게 겸손해야 되겠다 이런 생각이 든다. 저는 전남 순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입에 낙방한 뒤 서울로 올라와 학원을 좀 다니면서 재수 준비를 했다. 그러다가 학원을 다니던 중 우연히 친구를 만나게 됐는데, 그 친구가 구로공단에 있는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이 와중에 세진전자에서 인원 모집을 하더라. 세진전자에 입사를 하면서 공부도 공부지만, 제가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세계이기 때문에 한 번 경험을 해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서 입사를 하게 됐다. 입시 포기는 아니었고, 몇 개월 혹은 몇 달 동안이라도 현장 경험을 해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3~4개월 있다가 노조가 결성됐다. 제가 직접적으로 노조 결성하는 데 관여한 바는 없다. 그러다 어느날 노조위원장이 와서 저보고 '노조를 맡아달라'고 해서 맡게 됐다"

-당시에는 노조 만들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지 않나.

"그렇다. 그래서 제안이 왔을 때 굉장히 망설이고 고민을 했다. 제가 잘 모르는 분야였기 때문에. 그래서 일주일 정도 고민하다가 '제가 한번 해보자. 이것도 굉장히 의미가 있겠다' 싶어 그런 결정을 하게 됐다"

-그때는 노조가 금지되어 있지 않았나. 또 가입하면 탄압을 많이 받던 시기였는데.

"그 당시에는 노동 3권 중에 노조 결성권, 교섭권, 그리고 투쟁쟁의권이 있는데 세 번째가 막혀 있었다. 그럼에도 노조결성권이 허락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직간접적으로 사업주와 사업장으로부터 엄청나게 많은 탄압을 받았다. 그러니까 법으로 이게 허용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몰래 준비를 하는 식으로 노조를 결성하는 등 굉장히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저희 사업장에서도 처음에는 그랬었다"

-제가 아는 김문수 후보는 주변 사람들에게 한없이 인간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덕을 베푼다. 그런데 어떤 불의를 보거나 정의롭지 못한 일을 볼 때는 불같이 화를 내고 받아치기도 하는 면모가 있다. 여사님도 노조를 하게 된 가장 큰 동력이 그런 정의감 때문인지.

"저희 부친께서 교직에 계셨기 때문에 늘 바르게 살고, 불의를 보면 용납하지 않으셨다. 아마 그런 가정에서 키워지는 과정에서 조도 모르게 그런 것들이 몸에 배지 않았나 싶다"

-김문수 후보와 같이 설면서 우리가 모르는 단점도 있는지.

"담점이라기 보다는 본인이 원리 원칙대로 이제까지 살아왔기 때문에, 가정 내에서도 저에게 그 모습을 직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예를 들어 분리수거를 할때도, 종이박스에 테이프를 다 떼게 돼 있는데 이제 후보는 요만큼도 용납을 안한다. 후보가 분리수거한다고 내려가서는 한참 있다 온다. '왜 이렇게 빨리 안 올라오나' 싶으면 테이프를 다 떼고있다. 주변에 떼지않고 버려져 있는 박스들까지 본인이 그걸 다 하고 올라온다. 아주 사소한 것부터 원리 원칙대로 철저히 하기 때문에 좀 피곤하기도 하다. 근데 곁에 있는 사람보다 본인이 제일 피곤하지 않겠나. 융통성이라든가 편법이라든가 그런게 없으니까"

-그럼 장점은 어떤게 있을지.

"장점이 너무나 많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김 후보가 원리 원칙대로 살다 보니까 저희가 같이 살아온 45년 동안 깨끗하고 맑은 사람이었다. 또 청렴하고, 감동을 주고, 유능하다. 저희가 정치 생활 30년 동안 지역 주민들한테, 또 유권자들한테 인증을 받지 않았나. 정치를 제대로 못했으면, 한 번 하고 끝났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지역(경기도) 국회의원을 세 번 하고, 도지사를 두 번 하고, 장관까지 하게 됐다. 그만큼 저희를 아는분들에게 지지와 성원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이 든다"

-지금 이슈가 되고 있는 '법인카드 사용'에 대해서, 여사님도 같은 자리에 계셨었다. 유혹도 있으셨을 텐데, 사용할 생각은 안해보셨나.

"공무원들이 법인카드를 사용할 때는 범주가 정해져 있다. 그래서 저희는 그 원칙 내에서 사용했을 뿐이지 개인적으로 사용한다는 건 상상할 수가 없다. 또 그렇게 해서도 안된다. 우리 공무원들이 시킨대로 사용했다. 우리 공무원들이 법인카드 하나를 사용하는데도 철저하다. 이게 문제가 됐을 때, 당장 그 공무원들에게 영향이 미치고 책임 소재가 따르게 된다. 법인카드 한 번 사용하면, 공무원들에게 영수증을 제출한다. 또 한 번 필요한 결제를 하고 다시 또 가져가신다. 저희는 그렇게 사용을 했다"

-김문수 후보와 두분이 좀 닮아계신 것 같다. 무엇이든 원리 원칙대로 하시는 점이.

"저도 좀 비슷한 사람인 모양이다. 저도 이제 기본적으로 어떤 정해진 테두리 내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고, 주어진 환경과 저희 위치에서 활동하려고 했다. 그것을 벗어나려고 하는 게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저도 40년 정도 결혼생활을 하면서 남편의 생각을 알고, 스스로 끊임없이 절제의 세월을 보냈던 것 같다. 저희가 국회의원 할때도 저희 지역에 굉장히 어려운 분들이 많았다. 저도 여성이기 때문에 사치를 하고 싶고 그런 똑같은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 지역민들의 그런 실정을 알기 때문에 끊임없이 거기 눈높이에 맞춰서 제가 절제를 했다. 또 그들의 눈에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행동과 저의 모든 것들을 조심하려 노력했다. 국회의원 때 뿐만 아니라 도지사 할때도 마찬가지였다. 저로 인해 남편이 조금이라도 부딪치면 안되지 않나. 저희가 살아온 과정 자체가 절제, 검소, 노력하는 생활이었던 것 같다"

-여사님께서 남편인 김문수 후보에 대해 중점적으로 알리고 싶은 부분이 있으면 소개해달라.

"제가 지금 방송을 한다고 해서 남편을 또 이렇게 평가를 더 높이 하거나 또 낮추거나 그런것도 아니다. 남편은 처음과 끝이 똑같다. 순수하고, 나라에 대한 애국심,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같은 것들이 본인이 하고자 하는 바른 길이면 어떤 압력이나 편볍적인 요청이 있어도 자기 길을 가는 사람이다"

-여사님은 호남 출신이고, 노동 운동을 하셨다. 스스로 강점이라고 생각하시는 점은 무엇일지.

"저는 국회의원 배우자 또는 도지사 배우자, 앞으로 영부인이 되면 어떨까 이런 부분들을 생각해 본 바가 없다. 중요한 직함을 가진 아내의 역할이라는게 굉장히 힘들고 구속도 많지 않나. 원래 제 성격이 그런걸 굉장히 싫어한다. 저는 그냥 일개 설난영으로 개인적인 삶을 자유롭게 살고 싶어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대통령 부인이나 이런 목적하는 바가 없다. 다만 그 위치에 걸맞은 역할을 이제까지 해왔기 때문에 영부인이 된다면 다른 분들과 약간 다를 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어떤 독자적인 활동을 할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저희가 결혼하기 전에도 현장에 있는 많은 여성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일을 했었고, 남편이 국회의원을 할 때는 그 마음을 그대로 우리 지역민들에게 했었다. 남편이 경기도지사 때에도 마찬가지다. 경기도에 있는 독거노인, 장애인, 아동, 치매환자 등 어려우신 분들에 대한 시설이 굉장히 많다. 직분을 가진 사람의 아내로서 최선을 다해서 돌볼 수 있으면 돌보고 그들의 환경을 조금이라도 개선시킬 수 있으면 보람으로 생각하는 마음이었다. 만약 영부인이 된다면, 제가 했던 활동의 연장선에서 전국으로 확대되는 상황이 되지 않겠나 생각한다. 나라를 국위 선양할 수 있는 품격과 품위, 거기에 따른 일종의 지식도 필요할 것 같다. 우리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그 위치에서 정말 어려우신 분들을 위헤 힘이 되는 역할을 해보고 싶다"

-대통령 후보가 될 사람이 필요한 자질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

"대통령이 된다면 무엇보다 원칙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어떤 국정에 관여를 한다든가, 그런 부분에서 철저히 원칙을 지켜야 된다. 또 영부인으로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범주 내에서 충실하게 역할을 수행하고, 그 이상을 탐하거나 자신도 모르게 개입해선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김문수 후보는 주변 사람들 이야기를 잘 경청하시는 편인가. 어떤 경로로 시민들의 이야기를 들으시는지.

"주변 사람들의 어떤 말씀이라도 바른 말씀이라면 본인이 받아들인다. 아주 사소한 것부터 정책적인 면까지 받아들이려고 한다. 저도 남편에 대해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하는데, 제 남편이라고 해서 모든 것들이 100% 맞다는 건 아니다. 그래서 제가 집안의 야당으로 말을 해주고, 본인도 그런 것들을 받아들이고 하는 과정이 있었다"

-김문수 후보가 경기도지사 시절 택시 운전을 하며 도민들의 고충을 들었다. 그때 어떻셨는지.

"굉장히 좋은 경험이다. 택시기사를 해보지 않으면, 기사님들의 어려운 점을 우리가 언론이나 간접적으로만 이야기를 들을 뿐이지 실질적으로 그분들의 삶과 어려움을 알 수가 없다. 본인이 그걸 체험 한다고 하더라도 100% 그분들의 삶을 이해할 수는 없다. 김 후보가 주말마다 택시 운전을 했었는데, 기사님들의 고충과 어려움이 뭔지 깨닫고 본인도 많은 노려을 기울였던 것 같다. 경기도가 31개 시군인데, 각 시군을 다 돌아다니셨다. 예를들어 수원을 운전할 때는, 수원의 교통망과 신호망이 어떤지 살폈다. 또 우리 국민을 태움으로써 그 지역에 살고계신 분들의 말씀을 통해 문제점을 알아낼 수 있었다. 저는 아주 좋은 경험이고, 긍정적으로 한단한다. 봉사 차원의 문제보다는 각종 상황을 파악하려 했던 것 같다. 실제로 그러한 민원을 접하고 도정에 참작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김문수 후보의 딸 동주 씨가 '아빠는 사랑꾼'이라고 언급한 영상편지가 화제다. 실제로 아빠 김문수는 사랑꾼이 맞는지.

"저희 딸이 3살 때부터 취학전까지 탁아소에서 키워졌다. 저는 한국여성노동자회라는 여성단체에서 일을하며 서점을 운영하고 있었고, 남편은 구속된 상태였다. 그때도 우리 유시민 씨하고 다 같이 활동을 했을 때였는데, 딸을 키우면서 많은 활동을 하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남편이 2년반 동안 복역을 했다. 그렇지만 저희 가족 3명은 우리끼리 살아본 경험이 없다. 저희 집에는 일반 노동자부터 와서 먹고, 자고 수많은 사람들이 같이 공동 생활을 했다. 그래서 3명이 오붓하게 생활한 경험이 거의 없다. 그래서 딸이 아빠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아빠를 굉장히 어려워했었다. 그러다 보니 남편도 '이러면 안되겠다' 생각을 했을거다. 그때부터 적극적으로 딸하고 스킨십을 하려고 노력했었고, 늘 안아주고, 볼을 비비고, 어깨 위에 얹어서 데리고 다니고 상당히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제는 아빠에 대한 어려움도 거의 다 극복이 됐다. 남편은 나머지 인간관계에서도 인간에 대한 사랑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사람이다. 가족적인 사랑 외에도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라고 본다"

-김문수 후보가 국회의원들 중 최초로 탈북민 문제를 국제사회에 알리려고 기자회견도 하고, 삭발도 했었다.

"그렇다. 15대 국회의원 첫 해에 북한인권법을 발의했다. 당시 중국에 갔을때는 세계를 향해 탈북민들과 탈북하려고 하는 많은 북한 주민들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알리려고 했었다. 그런데 김 후보가 기자회견 하는 과정에서 불을 끄고, 많은 폭행을 당했었다. 그 보위부들이 당시 참여했던 우리 국회의원 4명 등을 갑자기 무차별적으로 공격했었다"

-김문수 후보가 탈북민들의 취업 문제라든가 정착에 여러 노력일 기울인 것으로 안다.

"탈북민들이 적응뿐만 아니라 취업문제와 문화적인 부분에서도 힘들게 살고 있다. 김 후보가 경기도지사 시절 저희 탈북민들을 전담하는 과를 만들어서 공무원으로 활동할 수 있게끔 채용을 했었다. 또 우리 경기도 곳곳을 여러차례에 걸쳐서 관광할 수 있도록 해서 탈북민들이 굉장히 좋아해주셨다"





정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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