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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바다 위 무릉도원…부산발 크루즈, 짙은 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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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룽·사세보 이장원 기자

승인 : 2025. 06. 10. 13:36

국내 출항 최대 규모 코스타 세레나 전세선
배 안이 복합문화공간, 즐기는 건 '나의 몫'
지룽·사세보 기항, 육지엔 또 다른 인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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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세보항에 기항한 코스타 세레나 호. / 이장원 기자
"이제 돌아가서 다시 일하려니 걱정이네. 할 수 있을까?"

부산항으로 돌아오는 크루즈선 안에서 중년 여성이 효도관광으로 모시고 온 어머니에게 묻는다. 속세를 잊다시피 했던 여행을 마치고 일상에 복귀하려니 심란한 모양이다. "할 수 있지, 왜 못해." 산전수전 다 겪은 노모의 단단한 한마디. 어딘가 기대고 싶은 딸의 마음에 큰 위안이 된다. 망망대해를 지나며 웃고 떠들고 보고 먹고 즐긴 시간. 바다 위 무릉도원(武陵桃源)은 모두에게 인생에서 흔치 않은 추억을 남겼을 것으로 보인다. 부산을 출발해 대만, 일본을 찍고 돌아온 크루즈 여행, 그 끝은 짙은 여운일테니.

◇ 내가 만드는 크루즈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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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타 세레나 호 판테온 아트리움. / 이장원 기자
지난 5월 하순, 부산항을 떠난 코스타 세레나호. 11만4500톤에 길이 290m, 폭 35.5m로 총 14층에 객실수가 1500개인 크루즈선이다. 바다가 익숙한 한국인이라지만 사실 이 정도의 배를 타고 여행할 일은 많지 않다. 한국에서 출항하는 최대 규모 크루즈다. 인터넷 동영상으로 예습을 해도 처음 타보는 이들에겐 그저 신기한 세상이다. 대극장과 수영장, 면세점, 헬스장, 선상 병원 등 없는 것이 없다. 그냥 쉬기만 해도 좋은데 공연과 선내 활동이 가득하다. 트로트 무대와 아크로바틱 공연부터 직접 참가할 수 있는 댄스 레슨, 옥수수주머니 던지기 놀이, 요가·스트레칭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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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타 세레나 호 대극장의 아크로바틱 공연. / 이장원 기자
전세선 여행을 운영하는 롯데관광개발이 선사 측과 협력을 통해 프로그램을 한국형으로 업그레이드한 흔적이 보인다. 롯데관광의 김정희 투어 인솔자는 크루즈 여행은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가만 보면 한국 여행객들은 자신의 여행을 만드는 데 약하지 않다. 정해진 파티 시간이 아니라도 무대를 무도회장으로 변신시켜 그 이상을 즐긴다. 바다가 보이는 헬스장에 가면 평소에 아령 한번 안 들 것 같은 아저씨가 기구를 들어올린다. 한 아주머니는 이탈리아어 레슨에서 '본 조르노'를 배우는데 사뭇 진지하다. 이것 저것이 궁금해지고 시도해보고 즐기게 만드는 것이 크루즈라는 공간이다. 혹시 바다 위에서의 먹거리가 걱정된다면 기우다. 굳이 비행기와 비교하면 기내식이 아무리 잘 나와도 크루즈 음식만큼 풍부할 수는 없다. 부페, 정찬 레스토랑, 바, 햄버거·피자·아이스크림 코너 등 먹고 마실 곳이 많다. 한국발 코스타 세레나호는 한식도 적절히 제공하지만 아무래도 육류 요리와 디저트가 강점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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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 레스토랑 베스타의 생쇠고기 필레. / 이장원 기자

◇ '그러려니' 하다 만난 고궁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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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기륭항에서 바라본 중정공원. / 이장원 기자
첫 번째 기항지인 대만 지룽항에 도착한다. 만 하루가 넘는 항해 끝에 도착하는 항구의 모습은 꽤나 감동적이다. 저만치 중정공원의 관세음보살상이 보인다. 바다를 지나는 가운데 다른 나라 항구에 잠깐 들러보는 경험이 그리 흔하진 않을 것이다. 이제 배에서 내려 그룹투어를 따라 간 곳은 타이베이의 번화가 시먼딩. 얼마나 배를 탔다고 사람 사는 곳이 반갑다. 시먼딩은 중국 본토, 홍콩과는 비슷하면서도 분위기가 다르다. 막 화려하진 않은데 아기자기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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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먼딩 한 식당 앞에 있는 개 '무지'. / 이장원 기자
거리를 걷다 보니 파스타를 파는 식당 앞에 엎드려 있는 보더콜리 한 마리가 눈에 들어온다. 이름이 '무지'라고 하는데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개인 듯 하다. 행인들이 와서 만지고 안아도 싫은 티 한번 안 낸다. 딱 봐도 순한 개이지만 목줄을 묶어 놓지 않은 것이 신경 쓰인다. 한국이라면 욕 좀 먹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러려니' 하라는 현지 인솔자 초미미 씨의 말이 떠오른다. 대만은 뭔가 조금 시원치 않아 보여도 그러려니 하다 보면 기대 이상의 감동이 있다는 말이다. 초미미 씨가 전해주는 대만 정치 야사를 들으며 고궁박물관에 도착하자 그 말을 이해한다. 널리 알려진 명소이지만 처음 가본 사람들에게 고궁박물관은 놀라움 그 자체다. 고대 상(商)나라 시대까지 거슬러올라가는 유물들의 전시 규모와 보존 상태가 상상을 초월한다. 한나절 남짓한 기항지 관광을 이만한 가치로 채우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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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고궁박물관 청(淸) 건륭 시대 유물. / 이장원 기자
◇ 아늑한 풍경, 석양이 드리운 사세보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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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쿠 이나리 신사의 정원 연못. / 이장원 기자
다시 바다를 지나 두 번째 기항지인 일본 사세보항에 다다른다. 일본 특유의 청결함과 정갈함이 며칠간 다소 흥분했던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힌다. 사세보는 여행으로 많이 알려진 곳은 아니지만 아늑한 분위기가 좋다. 버스를 타고 조금 이동해 사가현에 있는 유토쿠 이나리 신사로 간다. 시골 마을에 있는 절인데 경치가 만만치 않다. 이나리는 농사, 풍요, 성공을 관장하는 신이라고 한다. 나라와 종교를 떠나 행운을 기대하는 마음이 생긴다. 디자인에는 강점이 있는 듯한 일본의 색채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북적이는 교토의 후시미 이나리 신사보다 쾌적하게 둘러볼 수 있는 이곳이 더 낫지 않느냐는 말이 나온다. 사세보 연계 명소를 둘러보고 나니 크루즈 여행은 막바지로 향한다. 항구로 돌아오면 코스타 세레나호가 기다린다. 다시 배에 오르기에 앞서 사세보항의 풍경이 발길을 잡는다. 5번가 쇼핑몰과 부두, 바다가 어우러진 모습이 자못 아름답다. 노을로 물든 사세보를 뒤로 하고 배에 오른다. 크루즈 여행이라는 경험이 조금은 더 특별한 탓인지 못내 서운하다. 돌아가서 일할 생각에 걱정이 들 만도 하다. 그래도 마음 속 깊이 남은 추억이 살다보면 가끔 힘이 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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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세보항. / 이장원 기자
◇ 한국발 크루즈 전세선

롯데관광개발은 2010년 국내 최초로 정통 크루즈 전세선 운항을 시작해 부산, 인천, 속초, 대산항을 모항으로 전세선을 운항해 왔다. 지금까지 6만 2000명 이상이 다녀간 전세선 여행을 통해 크루즈 대중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롯데관광개발은 오는 9월 5일과 6일 각각 부산항과 속초항에서 출발하는 북해도 3대 미항 크루즈 전세선을 띄운다. 코스타 세레나호가 출항하며 일본 무로란, 쿠시로, 하코다테에 기항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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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타 세레나 호 아이스크림 가게 창 너머 바라본 석양. / 이장원 기자
이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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