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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에게 들려주는 지구인의 세계사] “전쟁이 국가를 만들고, 국가가 전쟁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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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8. 03. 17:29

외계인에 들려주는 지구인의 세계사 <48회>
송재윤
송재윤 맥마스터 대학 역사학과 교수
미도가 물었다.

"지구인의 역사에서 거대한 대륙 국가가 생겨난 까닭은 과연 무엇일까요? 지리 환경이나 기후 조건일까요? 무역로나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경제적 동기일까요? 아니라면 카리스마 있는 영웅들의 정복욕 때문일까요?"

제국의 형성과 발전에 관해선 여러 학설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세계사를 탐구하는 학자라면 그 누구도 이 중요한 질문을 회피할 수 없는데, 저마다 인간을 보는 관점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1950년대 비트포겔은 큰 강 유역에서 농경이 시작되면서 모두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대규모 수리 공사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강력한 전제 군주가 생겨났다고 설명했다. 고대 중국에 들어맞는 주장이지만, 이에 반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특히 관개 시설이 잘 정비된 고대 인도는 중국과 달리 느슨한 분권형 정부가 들어섰음을 보면 알 수 있다. '세계 체제론'을 제창한 월러스틴(Immanuel Wallerstein)은 무역과 자원 획득을 위한 경제적 동기가 제국 형성의 직접적 원인이라 주장한다. 무역을 통해 부유해진 국가는 더 강력한 제국적 통합을 이룰 수 있으나 경제적 동기만으로 제국의 출현 과정을 온전히 설명할 순 없다. 칭기즈 칸이 전쟁을 일으킨 동기를 단지 물적 탐욕으로 환원할 수 없다.

오르샤 전투
1514년 폴란드 국왕과 리투아니아 공작이 맞붙었던 오르샤 전투. 한스 크렐(Hans Krell, 1490?- 1565?) 작품.
◇ "전쟁이 국가를 낳았다"

"전쟁이 국가를 만들었고, 국가는 전쟁을 만들었다(war made the state, and the state made war)." 990년부터 1992년까지 1000년 유럽사의 현대 국가 형성 과정을 분석한 찰스 틸리(Charles Tilly, 1929-2008)의 테제다. 1000년 근세 유럽의 역사엔 다양한 규모의 무력 충돌이 5000건 이상 기록돼 있다. 1500년에서 1700년까지 주요 강대국은 75%에서 95%의 세월 동안 전쟁 상태에 놓여 있었다.

어느 나라든 외적과의 전쟁을 치르려면 국가 재정을 확충하여 대규모 상비군을 길러야 하고, 세금을 걷으려면 효율적 관료 체제를 세워야만 한다. 전쟁의 규모가 갈수록 커지면서 그에 비례해 군사비도 늘어나서 지배자들은 백성에게서 더 많은 세금을 걷어야만 했다. 재정 압박을 못 견딘 작은 나라는 더 강한 나라에 병합되었다. 1500년대 크고 작은 봉건 영지는 수백 개에 달했는데, 1900년에 이르면 오직 25개 정도만 살아남았다.

전쟁의 과정을 거치면서 유럽의 수많은 봉건 영지는 중앙집권적 행정 체제를 갖춘 현대적 민족국가로 변모해 갔다. 그중에는 프로이센이나 러시아처럼 무력으로 대규모 군대를 조성한 영토 국가도 있었고, 베네치아, 제노바, 네덜란드 공화국처럼 무역 거점으로 풍족한 자본을 비축하여 용병을 고용한 도시 국가도 있었다. 물론 가장 성공적으로 살아남은 경우는 무력과 금력을 모두 사용해 중앙집권적 관료행정과 대규모 상비군을 구축한 영국이나 프랑스와 같은 민족-국가(nation-state)였다.

중세 유럽의 포위전
중세 유럽의 포위전 (siege warfare). 작자 미상.
◇ 중화 제국은 전국 시대의 산물

전쟁이 국가를 만들고 국가가 전쟁을 만든다는 틸리의 테제는 중화 제국의 형성 과정에도 잘 들어맞는다. 중국사에서 최초 통일 제국은 춘추전국 시대의 혼란기를 거친 후에야 등장했기 때문이다. 진 제국의 형성은 전국 시대 끊임없는 전쟁의 결과였다. 오패가 각축하던 춘추시대(春秋時代, 기원전 770-476) 300년 동안 대략 500~600개의 전쟁이 이어졌고, 칠웅이 패권을 다투던 전국시대(戰國時代, 기원전 475-221) 250여 년 동안엔 300건 이상의 주요 전쟁이 발생했다. 끊임없는 전쟁 과정에서 봉건 제후의 친위병은 대규모 상비군 체제로 확대되었고, 중소 국가는 대규모 영토 국가로 병합되었다. 광활한 영토를 배경으로 한 전국 칠웅의 패권 다툼은 대규모 학살 전쟁을 일으켰다.

진시황은 대규모 전쟁을 벌여서 수백 개 제후국으로 갈라져 있던 동주(東周) 말기 천하의 모든 전쟁을 종식하는 최후의 전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마침내 통일 제국을 완성했다. 물론 진시황이 죽고 나자 다시 천하는 내전 상태에 돌입했지만, 한 제국은 다시 천하를 통일하여 진시황이 처음 도입한 제국의 체제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 틸리의 테제를 원용하자면, 중국사에서도 전쟁이 통일 제국을 만들고, 통일 제국은 다시금 전쟁을 불렀다.

◇ 진·한 제국의 인류사적 의의

수백 년의 전쟁기를 거쳐서야 비로소 출현한 진(秦)·한(漢) 제국은 인류의 역사에서 획기적 사건이었다. 최초로 등장한 대륙 단위의 제국이었으며, 그 제국의 행정 체제가 20세기 초까지 유지됐기 때문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의 국가도 여러 지역을 아우른 제국으로 발전했지만, 진시황 이후 전개된 중화 제국처럼 대륙 국가로 나아가진 않았다. 진 제국보다 200여 년 늦게 대륙 국가로 발전한 로마 제국은 대략 400여 년 이어지다가 동서로 갈라졌고, 머잖아 서로마 제국은 허망하게 사라졌다. 중국사에도 두, 세 번의 분열기가 있었지만, 로마 제국과는 달리 수(隨)·당(唐) 제국이 다시 나타나서 이후 천 년 이상 통일 국가로 살아남았다. 중국사는 평균 210년 주기로 왕조 교체를 겪었지만, 중화 제국 통일 정부의 기본 틀은 유지됐다.

대륙 단위로 형성된 중화 제국이 반란, 내전, 외침, 패망을 반복하면서도 2000년 넘게 존속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누구나 던지는 상식적인 물음이지만, 쉽게 답할 수 없는 역사학의 난제다. 넓은 영토를 정복했던 제국들은 대개 오래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기 때문이다.

전근대 제국이 붕괴했던 근본 이유는 바로 영토의 면적에 있었다. 넓은 영토를 강력하게 통치하려면 도로, 항만, 수로, 통신 등의 기반 시설을 갖춰야 하며, 대규모의 상비군과 경찰력을 유지하고, 또 수만, 수십만 명의 관료들을 고용해야만 한다. 산업혁명 이전의 모든 제국은 행정의 기반 시설이 현대 국가처럼 강할 수 없었다. 황제가 권력을 독점하여 전 영토를 중앙집권적으로 통치하려면 반드시 막대한 통치 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전근대 제국은 부득이 지방 엘리트와의 연대를 이룰 수밖에 없다. 흔히 봉건 제후를 두는 분봉제를 폐지한 중화 제국은 중앙집권적 체제였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지방 세력과의 연대를 통해서 유지되었다.

한 제국은 대토지를 소유하고 준(準)자치 세력으로 군림하던 호족(豪族)들에게 향리 행정. 조세 징수, 사회 치안 등의 지방 행정을 맡길 수밖에 없었고, 말기에 이르면 지방 세력이 스스로 병력을 키워서 중앙 정부를 위협했다. 삼국연의(三國演義)에 등장하는 동탁(董卓, ?-192), 원소(袁紹, ?-202), 조조(曹操, 155-220) 등은 지방 호족의 군벌화 과정을 보여준다. 당 제국은 지방을 장악한 호족 대신 중앙에서 임명한 절도사(節度使)에게 변방 방어와 군사 통솔을 일임했지만, 결국 절도사의 권력이 세습되면서 군벌화되었다. 요컨대 중앙집권적 행정력은 막대한 통치 비용을 초래하기에 중화 제국은 지방 행정을 지방 엘리트층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지방 세력이 강성해지면 결국 제국적 질서가 와해되는 상황에 내몰렸다.

송재윤 맥마스터 대학 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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