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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지텍 ' PRO X SUPERLIGHT 2c' 무선 게이밍 마우스 |
대한민국 게이머들의 책상을 점령하며 '국민 게이밍 기어'로 불리던 로지텍(Logitech)에 적색경보가 켜졌다.
단순한 주변기기 제어 도구였던 마우스 통합 소프트웨어가 게임 생태계의 공정성을 위협하는 '디지털 리스크'로 부상한 탓이다.
핵심은 사용자가 별도의 해킹 툴이나 복잡한 스크립트를 쓰지 않아도, G허브(G Hub) 내에 탑재된 '단순 반복 입력(광클)'이나 '매크로 설정' 같은 기본 기능이 게임의 규칙을 우회하는 불공정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이다.
게임사들이 선량한 이용자 보호를 위해 하드웨어 제재 수위를 전례 없이 높이는 상황에서 업계 1위 로지텍 제품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계정 정지의 잠재적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 "편의 기능인 줄 알았는데"...무너지는 경쟁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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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허브 캡처 |
게임업계가 로지텍 G허브 등 하드웨어 제어 시스템에 칼을 빼 든 배경에는 '공정성'이라는 게임의 본질적 가치 훼손 우려가 자리한다. 기존에는 전문가 영역인 '루아(Lua) 스크립트'나 '온보드 메모리'가 문제로 지적됐으나 최근에는 일반 유저들이 흔히 사용하는 기본적인 '매크로 편집' 기능까지 논란의 중심에 섰다.
게임에서 마우스 버튼 하나로 초당 수십 번의 클릭을 대신하는 '광클' 설정이나 버튼 한 번으로 특정 콤보를 자동으로 시전하는 기능 등은 누구나 쉽게 설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인간의 신체적 능력을 소프트웨어로 대체한다는 점에서 명백한 밸런스 붕괴를 초래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노력과 숙련도 대신 장비의 기본 설정이 승패를 결정짓는 구조는 상대적 박탈감을 안기며, 경쟁의 동력을 저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하드웨어 기능 남용의 폐해는 심리적 차원을 넘어 실물 경제 위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24시간 가동되는 자동 사냥이나 채집 매크로가 막대한 재화를 쏟아내면 게임 내 화폐 가치가 급락하는 '초인플레이션'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정상적인 플레이로는 장비 가격을 감당할 수 없게 된 일반 유저들이 이탈하고 남은 유저들마저 매크로의 유혹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연결될 수 있는 구조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를 단순한 비매너 행위가 아닌 게임사의 영업을 방해하고 생태계 수명을 단축시키는 산업적 재해로 규정하는 분위기다.
◆ "불공정의 온상 방치"...'클린 모드' 없는 로지텍의 책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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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허브 캡처 |
주요 게임사들은 생태계 존속을 위해 '무관용 원칙'을 내세우며 기술적·법적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엔씨소프트는 신작 '아이온2'는 매크로 사용을 업무방해 행위로 간주해 법적 대응을 진행하고 있으며, 넥슨 '메이플스토리'는 비정상적인 패턴을 걸러내는 '비올레타' 시스템과 더불어 부당 이득 전량 회수라는 강경책을 꺼내 들었다.
스마일게이트의 '로스트아크' 또한 로그 분석을 통해 반복적인 입력 패턴을 모니터링하며, 생활 콘텐츠 등에서 매크로 사용이 확인될 경우 무관용 원칙에 따라 영구 정지 조치를 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게임사들 역시 공정성을 해치는 기기의 접속을 다양한 방법으로 차단하는 추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애꿎은 일반 사용자들의 불안감만 가중되고 있다. 대다수 소비자는 악의적 해킹 의도 없이 제품을 구매해 제조사가 제공하는 기본 편의 기능을 사용했을 뿐인데 이것이 안티치트 프로그램의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위험을 떠안았다는 불만이 나온다.
실제 커뮤니티에는 단순히 마우스 버튼에 키보드 키를 매핑하거나 연사 기능을 썼다가 제재를 당했다는 호소가 잇따르지만, 로지텍 측의 대응은 미온적이라는 평가다.
벤큐 조위(BenQ Zowie) 등 일부 경쟁사가 소프트웨어 설치가 필요 없는 '플러그 앤 플레이' 방식을 채택하고 PC방 전용 드라이버를 제공하는 등 공정성 논란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로지텍은 문제 소지가 있는 기능을 제거한 클린 모드 등 제공에 소극적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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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지텍 라이센스 계약 일부 |
오히려 로지텍의 최종 사용자 라이센스 계약(EULA)은 제조사의 책임을 철저히 배제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지적이다.
약관은 소프트웨어 사용으로 인한 이익 손실이나 데이터 손실(계정 정지 등)에 대해 제조사가 책임지지 않음을 명시하며 리스크를 사용자에게 전가한다는 비판이 따른다.
전문가들은 하드웨어의 부가 기능이 불공정 행위의 도구로 전락한 상황에서 제조사가 안전장치 없이 해당 시스템을 방치하는 것은 시장의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라고 꼬집고 있다.
법무법인 바른 심민선 변호사는 "매크로 기능의 중립성과 범용성을 고려할 때 제조사의 판매 행위 자체를 업무방해죄로 단정하기는 어렵다"며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판매하는 만큼 구체적 범행에 대한 방조 고의성을 입증하기도 쉽지 않다"고 짚었다.
제조사는 기능을 팔아 수익을 올리면서도 법적 책임에서는 비켜나 있는 반면, 공식 프로그램을 신뢰한 소비자는 계정 정지나 형사 고소 등 위험을 떠안는 '책임의 비대칭'이 발생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심 변호사는 제조사의 면책 근거로 활용되는 약관 제11조를 문제 삼았다. 그는 "로지텍이 '어떤 경우에도 사용상 손해를 책임지지 않는다'거나 '실제 구입가격을 초과하여 책임지지 않는다'고 규정한 부분은 약관규제법(제7조 1~3호)에 위배되어 무효로 판단될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소비자들의 불안과 약관 논란에 대해 로지텍코리아 관계자는 "확인 중이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