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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도 '한국의 ASML'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곳이 있습니다. 1980년 설립된 토종 반도체 장비기업 한미반도체입니다. 2016년 국내 최초로 개발한 HBM 후공정 장비 TC본더가 한미반도체의 주력 제품입니다. TC본더는 열압착 방식으로 가공이 끝난 칩을 기판에 부착하는 장비입니다. 초정밀 맞춤 설계가 요구되는 HBM 생산에 필수로, 한미반도체는 이 분야 전세계 점유율 70%라는 독보적 입지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전세계적인 AI 열풍으로 HBM 시장이 커지면서 실적도 날개를 달았습니다.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5589억원, 2554억원으로 1년 새 251%, 638% 급증했죠. 특히 매출은 2005년 코스피 상장 때와 비교해 8배나 늘었습니다. 지난해부터는 마이크론 공급망에도 합류하며 'TC본더 1위' 타이틀을 공고히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한미반도체를 향한 우려 섞인 시선이 쏟아집니다. 일각에선 TC본더 시장에서의 독주 체제가 무너질 것이란 얘기까지 나옵니다. 후발주자인 한화세미텍이 지난달 SK하이닉스와 두 차례에 걸쳐 HBM용 TC본더 공급계약을 맺었기 때문입니다. 한미반도체는 지난 8년간 SK하이닉스에 HBM용 TC본더를 독점 공급해왔습니다. 이를 두고 SK하이닉스와 한미반도체의 신경전도 한참 진행 중이다. 일각에선 경쟁사가 등장한 만큼 한미반도체의 수주 실적에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보는 시각도 나옵니다. 이 여파로 1월 12만원선까지 올랐던 한미반도체 주가는 7만원선까지 내려갔습니다
한미반도체는 정말 위기에 빠진 것일까요. 시장에선 여전히 한미반도체의 입지가 굳건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홍콩계 증권사 CLSA는 TC본더 매출에서 SK하이닉스 비중이 낮아질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기존 점유율에는 변화가 없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 역시 가파른 시장 성장세와 고객사 다변화 전략을 근거로 3년간 독주 체제가 가능할 것이란 분석을 내놨죠. 실제로 올해 1분기 매출 중 해외 고객사 비중은 90%를 차지할 정도로 높습니다.
한미반도체는 올해 매출 1조2000억원 달성을 목표로 세웠습니다. 이를 위해 TC본더 신제품 출시와 고객사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죠. 최근 들어선 10년 넘게 거래가 중단됐던 삼성전자와도 긍정적 기류가 읽히면서 기대감을 키우고 있습니다. 반도체 패권 경쟁이 한창인 지금, 토종 기업을 향한 섣부른 위기론은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요.